2016년 1월 14일 국민의당 한상진 창당준비위원장은 4·19 묘소를 참배하면서 이승만 대통령(1875~1965)을 국부(國父)로 평가했다. 대표적인 진보파 사회학자가 대표적인 우파 지도자 이승만에게 그런 호칭을 바친 것이다. 비록 당 안팎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국부’ 주장을 철회했지만 어쨌든 그의 언급으로 한국에서도 국부 논란이 점화되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국부 호칭은 근대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데 헌신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도자에게 부여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조지 워싱턴, 남미의 볼리바르, 중국의 쑨원, 인도의 간디, 터키의 케말 파샤 등이 있다. 여기서 문제는 국부(國父)가 되어야할 사람의 자질이 정말로 무결점이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그런 점에서 연구대상은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1881~1938)일 것이다. 케말 장군은 쿠데타와 개혁으로 술탄 봉건왕조를 무너뜨리고 근대국가 터키를 만들었다. 유명한 갈리폴리전투에서 영국을 물리쳤고, 그리스와 아르메니아의 공격으로부터 국가를 구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케말 파샤(Kemal Pasha·케말 지도자)라는 1차 호칭이 붙었다.

 

초대 대통령이 된 후 케말 파샤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다. 언론통제를 실시하고 반항하는 신문을 폐간했다. 야당을 해산했으며, 소수민족 쿠르드족의 반란을 진압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반란 진압은 성공적으로 향후 터키 공화정의 안정에 아주 큰 이바지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터키 의회는 그가 죽기 4년 전 ‘아타튀르크(Ataturk·터키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그에게 헌상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케말 파샤와 비교해 보았을때 훨씬 유화적이었다. 전두환의 신군부처럼 신문을 강제 폐간하거나 언론 통폐합같은 언론통제를 실시하지도 않았고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해 대학교 내에 군경이 진입하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적 성과는 세계 어느 지도자보다 엄청나게 뛰어나다는 점에 있다. 오일쇼크 같은 악재를 극복하고 개발도상국중 꾸준히 고성장을 이룩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국부 대접을 해줘도 그 크나큰 업적에 비해 모자랄 판에 박정희 대통령 동상 설립을 하냐 마냐로 다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정권이 교체되면서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 업적 훼손에 열을 올리는 작금의 현실은 씁쓸하기까지 하다. 대만의 국부기념관과 터키의 아타튀르크 공항같이 국부를 기리는 시설이 자국의 수도에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서울에는 없다는 것이 그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다. 서울에 동상 하나 세우지 못한다면 이는 오히려 역으로 그를 국부(國父)로 부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닐까.

Posted by sis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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